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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번개 후기일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2. 28.

시작은 인사동 '비울채울'에서 했다. '인사동 5길', '인사동 7길' 따위로 표지가 붙은 걸 처음 봤다.

귀국해서 '적응'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도통 봐주기 어려운 것이 전철 안에서 주위 신경 끊고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들이다. 올디님은 '프랑스' 식이라고 말씀하시던데, 개인의 영역과 공공 영역을 구분하는 훈련을 미처 채 받지 못한 이웃이 많다는 말이고 '민폐'를 끔찍하게 여기는 동네에서 살았던 탓인지 그 차이가 확연하여 편안하지 않다.

그런데 이게 내 이야기가 되면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것이, 담배연기이다. 흠님을 제외하고 올디님, 나, 잠넘님이 뿜어대는 연기가 어떤 가게든 거진 너구리 굴 수준으로 만들었는데 별 개의치 않는 편안함이 있었다. 세상은 그렇듯 내게 불편함과 나의 쾌감을 주는 요소를 지 맘대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밀고당기기로 흘러가고 있나 보다.

'당분간 거의 노숙자' 생활을 해야 한다는 잠넘님 환영회를 빙자한 토요일 모임, 늘 그렇듯이 흠님과 잠넘님이 거품 물며 나누는 이야기는 따라가기 어렵다. 스피노자가 남 부럽지 않은 삐딱이 (반체제) 노선을 걸었다, 무사하기 위해 '신의 뜻'이라 포장했지만 라이프니츠라는 천재가 그 구라를 간파했다, 들뢰즈 저작을 읽어봐라, '철학이란 무엇인가'란 책 매우 골 때리더라, '앙티 오이디푸스' 강추이다. (나중 뒤져보니 '앙티 오이디푸스' 번역판이 둘 있는데 모두 절판/품절임. 1990년대 번역물이니 당연하다 싶음)

'mirror neuron'이란 개념을 잠넘님이 소개해 주셨다. 최근 뜨고 있는 이론이라는데, 덧붙여 '크노스(?)'란 개념도 있댄다. 모든 물체에는 그 물체의 행위를 지속할 권리가 있다는 것인데 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지는 나중 만날 때 들어보시라. 그걸 애제 스피노자가 주장했다는 말인지는 기억이 통 나지 않는다.

막걸리 안주는 떨어졌는데 비울채울 두부요리가 안된다는 말에 자리를 옮기는 분위기가 되었을 때 잽싸게 내가 계산했는데 무척 바람직한 행위였다. (가장 싸게 먹혔음) 이후 대련집, 인도 찻집 '蓮'에서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잠넘님, 올디님이 꽤 내셨으리라 가늠한다. 잠넘님이 죽전 들러 대전 내려가야 하는데다 들어부은 막걸리가 인도 찻집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결합하여 몸이 축축 늘어지는지라 10시 즈음 자리를 파했다.

아래 흠님의 벙개 공지에 댓글로 단 잠넘님의 협박성 댓글 탓인지는 도통 가늠하기 어렵지만 콩이님, 나는나님이 전화를 하셨다는 말은 적어야겠다. 왜냐면, 그 전화의 내용이 씨앗이 되어 봉화는 3월말, 4월초 가는 것을 나는나님이 추진하기로 하셨고 (흠님의 표현이데, 본인이 수긍했는지야 나는 알 길 없다), 그 이전 일요일 산행(3월14일)을 내가 게시판에 발의하기로 했으니까. 그 와중에 빈대님 댁이 봉화에서 가까우니 숙박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잠넘님 제안이 있었으나 흐벅진 민폐는 삼가하자는 의견으로 정리되었다.

가게를 오가며 쉴 새 없이 대화가 이어졌는데, '제네시스 쿠페'를 샀다는 잠넘님 설명 끝에 내가 이 분 실명을 모른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래서 올디님께 살짝 모든 이들의 아이디 말고 실명을 아는 사람 있느냐고 물으니 비슷한 형편. 그 참 희한하지...나야 특수 보직을 맡은 적이 있어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반 이하더라는 것이지. 여하튼 그 주제로 떠들어 보니 실명은 흠님이 가장 많이 알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혀 정보공개가 안 된 구성원이 딱 1명 있음도 확인함)

뿔뿔이 흩어진 후, 올디님과 인터넷에서 만난 지 10년 가량 된 이들이 아직 교류하는 매우 드문 모임이라는 대화를 나눴다. 그리움, 약간의 쓸쓸함, 어느 정도의 포기, 글치만 상당량의 오기, 어느 시절의 찬란한 시기에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는 정서적 일치감이 이런 모임을 이어오게 하고 있으리라 가늠한다. 때로 존재의 확인에 이바지하고 때로 옛 아이디가 접속하는 서버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유쾌한 일이겠지. (201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