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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떼

안나푸르나 라운드[8]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2. 13.


10월20일
아..토롱라!!!  5416m. 체력의 극한을 체험하는 날이다.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의 최대고비인 토롱라를 넘어야한다.
새벽 3시에 일어나 갈릭스프와 티베탄 브래드를 하나씩 먹고 하이캠프를 출발. 다른 일행들은 고산증과 오늘 토롱라 넘을 긴장으로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데 나는 산에 들어온 이후 드물게 푹 잘 잤다. 특이하긴 참 특이한 신체 조건이다. 컨디션이 괜찮다. 출발 전 은정씨가 자기는 기어서라도 뒤 따라갈 테니 많이 뒤 쳐져도 상관 말고 올라가라고 말한다. 자못 비장하다. 병철씨와 나를 제외한 모두가 다이나막스를 복용.가장 경험 많은 주미씨네 포터가 앞장서고 나제스가 맨 뒤에 선다. 새벽 하늘엔 히말라야의 별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와 우리를 마중하고 발 밑은 눈으로 온통 새 하얗다.  눈 앞에만 펼쳐지던 그 설산을 우리가 직접 밟고 있다. 걸음걸음 한치 앞도 안 보인다. 앞장 선 람이 가끔 뒤 돌아 일행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은정씨의 대답이 멀리서 들린다. 나제스가 은정씨와 함께 오니 안심이다. 발 밑의 눈과 헤드랜턴에 의지해 오르는 오르막,한 줄로만 가야하는 낭떠러지 길이다. 아찔하다. 일행 중 하나가 랜턴으로 발 밑의 낭떠러지를 계속 비춰주며 올라간다. 면 장갑을 끼고 스틱을 쥔 손이 떨어져 나가겠다. 한국에서 배낭 꾸릴 때 스키 장갑을 가져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옆에 있던 남편이 스키 장갑을 가져갈 정도면 지금 당신이 가져가는 장비로는 어림도 없다며 가져갈 필요 없다고 말해 그냥 두고 왔는데 남편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홍두깨인 걸 왜 또 잊었던가. 흘러내리는 콧물은 이제 아예 닦기를 포기한다.
얼마나 올라갔나. 토롱라까지 딱 하나 있다는 숍에 도착했다. 먼저 온 트레커들로 붐벼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않다. 어찌어찌 들어가 보니 나제스가 앉아있다가 제 옆에 자리를 마련해 준다. 다른 일행들은 어디서 어쩌고 있는지. 코코아를 주문해 나제스와 나누어 먹는다. 오줌이 마렵다. 허허벌판에 겨우 얼기설기 엮어 만든 숍이니 화장실이 있을리 만무여서 숍 뒤쪽으로 가 누가 보든말든 눈 밭에서 그냥 볼 일을 본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 다행이다. 옆에서는 누군가 토하고 있다. 토할 정도면 고산증이 심하다는 건데....몇 몇은 말 서비스를 받아 말을 타고 떠난다. 은정씨도 알아보더니 너무 비싸 안되겠다고 어떻게 해서든 걸어가 보겠다고 한다. 병철씨와 나만 빼고 일행 모두가 머리가 아파 걱정이다. 그래도 심하지 않다니 다시 출발한다. 이번에는 은정씨를 맨 앞장 세우고 모두들 은정씨 속도에 맞추기로 한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니 걷기가 한결 편하다.
드디어 토롱라. 이미 날은 밝았고 정상엔 수 많은 깃발이 어지럽게 춤추고 있다. 눈 속에 날리는 깃발들. 환상의 세계다. 은정씨가 내 어깨에 기대 아이 마냥 엉엉 운다.


토롱라 정상
처음으로 모두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토롱라패스 5416m에서... 토끼뿔님 그렇죠? 맨 왼쪽 나래스, 젤 폼나네요. 우리도 그랬어요. 나래스는 서울 홍대앞에서도 먹어줄 오빠라고^^ 선량하고 아주 깊은 눈매를 가졌지요.

춥긴해도 다행히 바람은 없다. 북적북적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흡사 만국기 펄럭이는 옛날 시골학교 운동회에 온 것 같다. 누군가 하모니카를 부는데 '유아 마이 썬 샤인'.  마낭에서 만났던 이스라엘 친구를 이곳 정상에서 다시 만났다. 반바지 차림이다. 카메라 밧데리가 다 되는 바람에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쉽다. 나와 함께 사진도 찍었는데 누가 찍어 주었는지................

아쉬운대로 마낭 숙소에서 같이 찍은 사진으로 대신(저 사진 속의 반바지를 그대로 입고 토롱라를 왔다)



하이캠프->토롱라패스 (4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