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마스떼

안나푸르나 라운드[6]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2. 1.

10월18일
오늘의 목적지인 레더는 마을도 작은데다 이 곳 마낭에 묵었던 트레커들이 대거 몰려 숙소 부족이 예상되므로 나래스가 먼저 출발하여 롯지를 잡아두기로 한다. 우리는 새벽 밥 먹고 출발한 나래스 덕분에 여유있게 움직인다. 마낭은 크고 제법 여러 시설을 갖춘 곳이지만 아주 가까이 설산이 있고 마을을 둘러싼 산에 나무가 거의 없는 고지대라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집들도 멀리서 보면 거의 폐허 처럼 보인다. 바람이 거칠고 흙이 인다. 마치 바람을 타고 저 멀리서 망토를 걸친 클린트이스트우드가 총을 잡고 나타날 것만 같은 황량한 서부의 분위기다. 마낭의 매력이다. 마낭을 지나면서는 티벳불교의 영향으로 곳 곳에 수 많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인다. 네팔인들의 소망과 바람이 함께 춤 춘다.


경전이 빼곡이 적힌 깃발들.

중간에 쾌활하기 이를 데 없는 눈 파란 아줌마가 운영하는 전망 좋은 롯지를 만나 차 한잔 하며 쉬어가기로 한다. 보통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롯지에서는 손님이 주문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데 이 아줌마는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돌아다니며 웃고 떠들며 분주하다.

전망 좋은 롯지에 앉아 차를 마시는 우리 일행들

조금 더 올라오니 현지인 아줌마가 운영하는 초라한 숍이 나온다. 이미 서양 아줌마네 롯지에서 차를 마신 트레커들이 모두 그대로 지나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 곳까지 와서 차를 마실 걸. 그냥 지나치는 발 걸음이 미안하다. 사람만 만나면 하게 되는 '나마스떼' 인사도 못하고 지난다.
계속되는 황량한 들판을 가로질러 걷다보니 저 만치 쯤에 '바그다드 까페'가 서 있을 것 같다.  뚱뚱한 독일 아줌마가 남편과 싸우고 혼자 큰 가방을 들고 씩씩하게 들어서던 바람부는 사막과 그 곳에 낯설게 서 있던 바그다드 까페. 그 영화를 본 은정씨가 말한다. "그러게 말이예요. 이 들판에 스피커가 있어 'Calling You'가 흘러나왔으면 좋겠어요"  나도 불러다오. 자스민이 마술 처럼 다시 돌아온 것 처럼 나도 그렇게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이 히말라야에...

은정씨와 주미씨가 고산증세로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이제 서서히 4000m 이상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다들 무사히 지나기를.
여기는 레더. 롯지가 2개 밖에 없다. 지금까지 중 최악이다. 허허벌판에 바람 그대로 맞으며 서 있는 롯지.씻을 곳도 없다. 씻을 곳을 커녕 어디에도 수도꼭지 조차 없다. 바람 소리 무서운 이 곳에서 과연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을지. 처음 산에 들어와 만났던 마리화나 하던 미국아이들. 바람 부는 바위에 올라 앉아 손바닥 만한 수첩에 앞에 보이는 설산을 그리고 있다. 아는 체를 하며 그림 좀 보여달라하니 웃으며 보여준다. 서양 아줌마가 운영하는 찻집에서는 우리 뒤에 앉아 멋지게 피리를 불더니 추워 장갑 낀 손으로 그림이라...스무 살이나 됐으려나.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 불을 켜니 침대 위에서 쥐가 도망도 가지 않고 빤질빤질 우리를 쳐다 보고 있다. 안 비켜?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우리가 비켜줘야지. 남자들과 방을 바꾼다.

마낭->텡기마낭->군상->야크카르카->레더 (5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