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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떼

안나푸르나 라운드[4]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8.

오늘의 목적지는 마낭. 이 곳 피상에서 마낭까지 가는 길은 두 가지로 새 길과 옛 길이 있다. 훈데공항이 생기면서 새로 난 길은 피상 아래 쪽으로 이어지는데 길이 평탄하고 아름다운 숲을 지나지만 전망은 좋지않다고 한다. 반면 옛 길은  피상 윗 마을에서 이어져 길이 험하고 새 길에 비해 3시간 이상이 더 걸린다.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누어 나,종환,병철씨는 옛 길로, 체력에 자신없는 은정,은영,주미씨는 새 길로 가기로 한다. 무거운 배낭을 멘 포터들에게 미안해 우리 셋이 가려했으나 길 안내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나제스가 따라 나선다. 어찌나 고맙던지 우리 모두 차례로 나제스를 안아주었다. 사실 포터는 짐만 목적지까지 옮겨주면 그 뿐,가이드도 아닌데 길 안내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무거운 배낭을 지고 우리와 함께 윗 길로 가겠다 따라나서니 그만 똥싼바지 입었다고 흉본게 미안해진다. 은정씨네 보다 3시간 이상을 더 가야하는 우리가 먼저 아침도 먹지 않고 출발한다. 롯지 주인이 불친절하고 음식에서도 야박하여 가는 도중 롯지를 만나면 먹기로. 은정씨네  팀이 자신들이 마낭에 먼저 도착하여 시설 좋은 롯지를 잡아두겠으니 조심해서 천천히 오라고 배웅나와 손을 흔들어 준다.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호기롭게 나선 길이었으나 이거야 숫제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 길이다. 아침을 먹지 않고 나선게 큰 불찰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걸을 수가 없다. 쵸콜렛과 물로 배를 채우며 가파른 길을 오르고 또 오르는데 뒤에서 누가 불러 돌아보니 우리 보다 한 구비 뒤에서 올라오고 있는 프랑스 친구들이다. 서로 대단하다며 양 손 엄지를 세워주고 가던 길을 계속 간다. 그 친구들이야 말로 포터도 없이 1년 이상을 길에서 살아 낼 엄청난 크기의 배낭을 짊어지고 이 험한 길을 오르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달 수 밖에...3시간 이상을 올라 게루의 한 롯지에 도착하니 눈 앞에 엄청난  설산의 풍광이 펼쳐진다. 덕분에 오늘은 설산을 바로 눈 앞에 두고 밥을 먹는 행운을 누린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 트레커들. 왼 쪽 마주보이는 두 남자가 프랑스 친구들이다


롯지에서 만난 '소남'이란 이름을 가진 원주민 아기(이번 여행에서 내가 찍은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대 여섯분의 서양 할아버지들이 떠날 준비를 하다가 서로 어깨를 겯고 흥겹게 노래를 부르신다. 거기에 모인 모두가 박수로 격려한다. 국적은 모르겠으나 은퇴 후 친구들끼리 트레킹 중이신 듯 (나이스 실버!)
나제스가 따라 나서 주지 않았으면 큰 일 날 뻔. 적은 팀이 이 길로 올라오고 워낙 긴 코스이다 보니 어느 순간 다른 어떤 팀도 보이지 않고 우리끼리만 걷고 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우리 바로 옆 눈 높이에서 설산이 우리와 함께 걷는다. 지금까지 단연 최고의 길이다. 가는 곳 곳마다 나제스의 설명이 이어진다. 저거는 안나푸르나 2봉,3봉,4봉, 강가푸르나,캉샤르캉...그 어떤 가이드보다 훌륭하다.

나제스와 함께


발 밑은 끝을 볼 수 없는 낭떠러지다

이제 길은 최고점을 찍은 듯 평탄하게 이어진다. 길은 걸을 때 마다 변한다. 제법 숲이 우거졌다가도 바람이 쓸고 간 듯 삭막한 사막 같은 곳을 지나기도 하고 도무지 속도를 내기 어려운 돌 밭을 만나기도 한다. 9시간 이상을 걸어야한다는 걸 알고 온 길이지만 너무 지치고 힘들어 지나가는 버팔로라도 잡아 타고 가고 싶다.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난다.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도무지 이런 곳 어디에 학교가 있다는 것인지. 오는 도중 어떤 마을도 지나지 못했는데 도대체 어디 쯤에 집이 있다는 것인지. 옛날 우리 부모님들이 그랬듯이 10리 20리 길을 걸어서 다니는 것이겠다. 모두 똑 같은 가방을 멨다.

이 친구들의 집은 어디인가

드디어 마낭이다. 마지막엔 황량한 들판을 끝도없이 가로질러 패잔병 처럼 걸어가다  우리와 따로 간 나래스와 주미씨네 포터를 만났다. 아랫마을에 도착한 나래스의 형(역시 포터이다)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먼저 도착한 일행이 강가푸르나 호텔에 자리를 잡았다고 알려준다. 앗! 스페인 아줌마들이다. 역시나 오늘도 빨간 파카를 입고 있다. 그들이 입었던 반팔도,긴팔도 파카도 모두 빨간색이다. 숙소가 너무 추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중이란다. 이곳에 어제 도착하여 오늘 쉬고 내일 떠난다고. 불쌍한 구준표. 그 날 손잡혀 결국 피상까지 끌려간 모양이다. 건투를 빌어주었건만.
우리가 늦게 도착한 탓에 따뜻한 물은 이미 없다. 그러나 어제도 못 씻고 오늘 하루종일 뒤집어 쓴 먼지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찬물로 샤워를 하다 기절하는 줄. 불나간 다이닝룸에서 남자들은 들어가 자고 여자들 넷이 촛불 아래 밤 늦도록 이야기로 즐겁다. 읽은 책부터 영화 여행,그리고 낭만에 대하여...


피상->게루->나왈->뭉지->마낭(9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