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선빵이 최고다. 주먹질도 그렇지만 화해도 그렇다. 은정씨가 먼저 화해의 악수를 청하고 나니 벌쭘해진 종환씨가 은정씨 뒤만 따라다니며 점심을 굶어서 어쩌냐 쵸콜렛이라도 먹겠느냐,가방 들어줄께...설레발이다. 은정씨가 선빵 제대로 날려주었다. 아무렴 져 주는게 이기는 거다. 좀 더 가자니 뒤에서 누가 우리를 부르는데 한국말이다. 이런...주미와 은영씨(아이고... 나제스 나래스나 은정 은영이나...)다. 우리가 출발하기 전 날 산촌다람쥐에서 만난 아가씨들인데 ABC코스(Annapurna Base Camp)를 하려다 우리를 만나 방향을 바꿨다. 함께 출발하고 싶어했으나 트렉허가증을 받지 못해 다음날 뒤 따라 오겠다 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산 속에 들어와 만나니 여간 반가운게 아니다. 우리보다 하루 늦게 출발해 5일만에 따라 잡았다. 병철씨와는 네팔로 넘어오기 전 인도 여행중에 이미 한번 만났던 사이로 반가움이 좀 더 각별하다. 이렇게 해서 일행이 여섯명으로 늘었다.
역방향으로 내려오는 팀들이 있어 알아보니 지금 마낭에 눈이 많이 내려 넘지 못하고 다시 내려오는 중이란다. 아..이런 복병이.잠깐 고민했지만 예서 말 수는 없는 노릇, 그대로 가기로 한다. 우리와 자주 마주치던 한 팀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심각하다. 포터가 가방을 던지고 가 버렸다는 것. 쌤통이다. 건장한 것들이(안 건장해도 그렇다)포터에게 엄청난 짐을 지게하고 탈래탈래 가더니...보는 우리가 다 미안했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포터를 산행을 도와주는 파트너로서가 아닌 돈 몇 푼으로 짐꾼으로 부리고 대하는 사람들. 심각하면 뭐하나.이제 지 들이 다 지고 다녀야지.
오늘의 목적지는 피상이다. 피상은 윗 마을과 아랫마을이 있는데 트레커들이 주로 묵는 아랫마을을 마다하고 우리는 윗 마을로 가기로한다. 산 꼭대기에 자리 잡은 윗 마을의 전망이 뛰어나기 때문인데 거의 죽을 뻔했다. 마을은 눈 앞에 뻔히 보이는데 구불구불 계단으로 이어지는 길은 끝이없다. 롯지가 많지 않아 방이 거의 다 찬 관계로 우리는 2인 1실로 들지 못하고 화장실이 바로 옆인 도미토리로 안내되었는데 화장실과 방의 천정부분이 뚫려있어 냄새가 기막히다. 그 길을 다시 내려 갈 수도 없고..어쩔 수 없이 짐을 푼다. 그러나 창으로 보이는 강가푸르나의 전경 앞에 입이 딱 벌어진다. 새벽엔 창을 통해 일출도 볼 수 있다하니 화장실 냄새 따윈 바로 잊고 만다.
피상 윗 마을
오늘 종환씨와 다툼을 벌인 은정씨가 결국 몸살이 나고만다. 열이 나고 추워 침낭에 들어가 꼼짝 못하고 누워있다. 감정이 상해 기력을 소진하고 점심도 거른 탓이다. 안 그래도 체력이 가장 약해 신경이 쓰였는데 걱정이다. 따뜻한 생강차와 감기약을 챙겨주고 우리는 곰파(사원)로 올라간다. 이곳 피상에 있는 곰파는 규모가 꽤 큰 편이다.
곰파 가는 길
입 맛 없어 저녁도 거의 먹지 못한 은정씨를 위해 서울에서 내가 가져와 아껴 먹던 라면을 끓여주니(병철씨가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발열제를 가지고 왔다) 눈물 콧물 훌쩍이며 국물에 밥까지 말아 다 먹는다. 우리는 그동안 라면 하나 끓여 네 명이 먹었다. 우리와 자주 만나 우리 일행과 친해진 프랑스 친구들이 이웃 롯지에 있다가 쵸콜렛을 들고 병문안을 와 한참을 웃고 떠들다 간다. 이 친구들은 서로 이웃집에 사는 이웃 사촌들로 지금 1년 넘게 세계여행중이다. 나이도 스물다섯,서른다섯으로 무려 열살이나 차이가 나는데 둘 다 보통 장난꾸러기가 아니다. 어떤 뛰어난 풍광도 사람풍경만 못하다.
차메->브라탕->듀크레코카리->피상(5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