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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떼

안나푸르나 라운드[2]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4.

10월14일
어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비교적 깨끗한 방에서 자서인지 드물게 푹 잤다.참 쥐도 없었지(어딜가나 쥐새끼만 없어도 살겠다) 롯지 아주머니가 어찌나 친절하고 순박한지 적은 돈이지만 팁을 드렸다. 기념사진도.


트레킹을 하다보면 모두들 비슷한 일정으로 도는지라 다른 일행들과 자주 마주친다. 첫날 만나 같은 숙소에서 묵었던 스페인 두 여자를 다시 만났는데 손까지 잡으며 아주 반가워한다. 그들의 포터가 많이 처져 따라온다. 그 포터는 구준표를 닮아 우리가 '섭섭한 구준표'라 불렀는데 다시 만나니 반갑다. 구준표는 자기네 트레커보다 우리 일행하고 더 친했는데 우리에게 와 스페인 아줌마들을 힐끔거리며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우리 트레커는  오늘 피상까지 가고 싶어하는데 나는 차메까지만 갈거야. 피상까지는 힘들어서 못 가. 그래서 일부러 천천히 걷는 중이야"  꽤나 재미있는 친구이다.  글쎄...건투를 빈다.
차메는 제법 큰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체크포인트가 있어 트레커들은 모두 트렉허가증을 제출해야한다. 허가증을 분실한 경우 2배의 요금을 물어야한다. 그런데 총은 왜 들고 계신지 모르겠다. 안으로 들어가니 게시판에 행방불명된 트레커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군데군데 롯지에서도 볼 수 있는 사진인데 일행도 포터도 없이 혼자 왔다가 영영 행방불명이 된 사람들이 간혹 있다고. 그들의 무사를 빌어본다. 다행히 차메에 환전소가 있어 달러를 가져온 은정씨와 종환씨에게 50불씩 100불을 빌려 환전했더니 불끈, 세상 두려울게 없다. 그 길로 달려가 빵도 사먹고 비스켓도 사먹고 이 곳까지 와 국위을 선양하고 있는 쵸코파이도 마구 사먹는다.
구준표의 엄살이 아니더라도 피상까지는 무리일 듯 싶어 우리도 오늘 피상을 포기하고 이곳 차메에서 묵기로 한다. 병풍처럼 펼쳐진 절벽 밑에 자리잡은 山裝이라 쓰인 롯지에 든다. 한자가 낯설다 싶더니 티벳사람이 운영하는 롯지다. 앞으로는 마나슬루가 버티고 서 있고 그 사이로 설산이 솟아 있으니 이 곳이 샹그릴라이지 싶다. 밤이 되자 날씨가 급강하. 정말 많이 춥다. 저녁 식사 후 다이닝룸에 장작불이 지펴지니 모든 투숙객들이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앉아 술마시고 웃고 떠든다. 또 어김없는 정전이다. 촛불이 켜진 다이닝룸은 공연장으로 변한다. 각국 대표들이 나와 노래하고 기타치고 춤도 춘다. 한국팀 대표로 종환씨가 나가 윤도현의 가을우체국앞에서를 멋지게 부른다.'집시는 떠날 때 기타만 챙기다'는 이름을 가진 레스토랑이 있다지.. 자기가 있는 곳에서 떠나 이 곳에 모인 우리모두 집시가 된다 . 참 마리화나가 한 차례 돌기도 했지.... "여행은 인간이 자신의삶에 써내려가는 긴 편지 같은 것이다"라고 시인 김경주는 말했다. 어떤 우연 앞에 나는 또 설레게 될까. 이번 여행에서 난 또 어떤 편지를 쓰게 될까. 정전된 산속의 밤하늘엔 별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내린다. 별자리를 잘 아는 은정씨가 하나하나 짚으며 설명해 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별자리 공부 좀 하고 올 걸. 


장작불이 다 꺼지도록 놀다보니 주인이 먼저  들어가 자는 바람에 담요를 챙기지 못했다. 옷을 있는대로 껴입고 털 모자도 뒤집어 쓰고 침낭 속에 들어간다. 내복 챙겨온게 얼마나 다행인지.
다나큐->고도->차메(4시간)

10월15일
새벽에 어찌나 춥던지 이가 달그락 거린다. 흠...노는 것도 좋지만 오늘부터는 숙소 정하면 담요부터 챙기기로 결심,또 결심한다. 돌무더기 절벽길이 오전 내 내 이어진다. 점심 먹으러 들른 롯지에서 은정씨와 종환씨가 말다툼을 한다. 둘이 배낭을 함께 쓰고 있는데  누구의 실수인지 은정씨의 선글라스가 사라진 것. 서로 니 탓이네 하다 급기야 험악한 소리까지 오간다. 가장 어린 병철씨가 어쩔 줄 몰라하며 나에게 나서 보라며 눈짓을 한다. 가만 놔둔다. 저럴 땐 서로 하고 싶은 소리 다 해야한다.  저 둘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한번 터질 때가 된 것이다. 결국 은정씨가 눈물을 보이고 나서야 내가 가운데 섰다. "걷기도 힘들다. 이제 고만해라" 그러나 둘 다 분을 삭이지 못하고 들고 있던 물병까지 집어 내 던진다. "너희들 계속 이러면 힘 빠지고 기분 상해서 더 못간다. 화해하지 않으려면 각자 되돌아가라. 난 병철씨하고 둘이 간다" 은정씨가 다른 곳으로 갔다 한참만에 돌아와 종환씨에게 손을 내민다. 종환씨도 쭈뼛거리다 손을 잡는다. 체력 소모로 인해 모두들 신경이 예민해진 탓이다. 그나저나 지금이야 괜찮다지만 눈 길을 넘을 땐 선글라스는 필수 장비인데 은정씨가 큰 일은 큰 일이다.
땀에 젖어 기진맥진 걷는데 옷을 홀랑 벗은 사내 녀석들의 물장구 소리가 요란하다. 우리도 물 본 김에 쉬어가기로. 팬티도 입지 않은 아이들,아직 부끄러운 줄 모르는 나이다.

에고...고만하자. 자자.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