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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파더>

[소설 '파더'] 승재와 민수(2)

by 뉴클리어 2012. 10. 27.



잠깐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다. 준산은 머리맡에 둔 일제 카시오 전자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여섯 시를 지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혼자였다. 이불을 걸친 채 잠시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버지가 방 안으로 들어 왔다.

“일어났나, 어서 씻어라 조금 떨어진 곳에 해장국 파는 집 있더라”

아버지가 가까이 다가오자 싸늘한 기운이 밀려 왔다. 겨울 문턱의 가을이었다. 준산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무심하게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화장실로 갔다. 씻고 나오니 방은 말끔하게 정리 돼 있었다. 준산은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오늘 정밀신검이라 아침 먹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도 별로 없습니다.”

아버지는 뭔가 많이 아쉬운 듯 했다.

준산은 여인숙을 나오면서 아버지라도 해장국을 드시라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속에서만 맴돌 뿐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집결지인 중원동 중원초등학교 앞으로 가야했다.

두 사람은 걷기 시작했다. 준산이 앞서고 아버지는 뒤를 따랐다. 한참을 걸으니 해장국 집이 보였다. 준산은 아마 아버지가 여기까지 왔을 것이라 여겼다. 가게 밖으로 나와 있는 큰 가마솥에는 검붉은 선지국이 펄펄 끓었고 그 위로 굴뚝 연기마냥 하얀 김이 솟아났다. 가게 안엔 밤새 헌 속을 달래는 몇몇의 술꾼들이 보였다.

집결지인 중원초등학교가 가까워지자 또래의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게 중에는 1차 시험 치를 때 면이 익은 이들도 보였다. 준산은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꼴똘히 생각하는 듯 10여 미터쯤 떨어져 따라오고 있었다. 준산이 쳐다보는 것도 모르는 듯 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엔 공군사관학교로 수험생들을 실어 나를 군용버스 다섯 대가 대기 중이었고 군복을 입은 장교와 망토를 걸친 사관학교 생도들이 학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준산이 학교 입구에서 멈추자 아버지가 옆으로 오며 말했다.

“바로 타야 되나”

뭔가 많이 아쉬운 듯한 표정이었다.

“십분 정도 시간이 있습니다.”

준산이 시계를 보며 퉁명스럽게 말하자 아버지는 군용버스 반대편에 있는 큰 느티나무 쪽 벤취로 가서 앉았다. 준산도 따랐다. 

“앉아라” 

아버지는 담배를 꺼냈다.

“사이비 신자야 난..., 교회 다니면서 술, 담배 먹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아무런 말도 없이 담배를 천천히 피웠다. 준산은 자신도 담배를 피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다 피운 아버지는 준산을 쳐다보았다. 선한 모습이었다.

“준산아, 니가 나를 이해 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용서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말이다”

아버지는 말을 끊었다. 그러더니 뭔가 가슴에 맺히는 게 있는 듯 어깨를 좁혀 가슴을 위로 올리며 꺽~ 하는 소리를 냈다.

“나는 큰 욕심이 없었다. 그냥 우리 네 식구 한 곳에 모여 같이 사는 게 제일 큰 소망이었다. 우리 네 식구 떨어지지 않고 아침 먹고 저녁 먹고, 휴일에 놀러도 가고... 그냥 그렇게 오순도순 사는 거였다.”

아버지는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거두고 만면에 웃음을 띄며 준산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준산은 그게 싫지 않았다.

“내 새끼...”

아버지의 목소리가 약간 젖은 듯 했다.

“근데 그렇게 살기가 참 힘들더라, 우리 네 식구 큰 욕심 안 부리고 평범하게 사는 게... ”

준산은 속이 심하게 울렁거리는 걸 느꼈다. 이런 분위기가 어색했다. 갑자기 빨리 자리를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보아도 될 시계를 계속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준산의 불편한 기색을 눈치 챈 듯 일어나더니 등산용 가방에서 성경책을 꺼내 준산에게 내밀었다.

“준산아, 만약 말이다 만약에 말이다, 니가 결혼해서 애 낳고 혹.... 그러니 내가 없을 때 말이다. 그때 내가 없고, 혹시 말이다.... 누가 널 찾아오면 말이다.....”

아버지는 준산이 성경책을 받지 않고 멍하게 있자 준산의 가방에 성경책을 밀어 넣고선 자크를 잠궜다.

“그때 혹시 아버지가 생각나면 시편을 읽어 보거라...”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교의 호각 소리가 들렸다. 학교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학생들이 그 소리를 듣고 각자 배정 받은 차로 달려가는 걸 보고선 준산도 일어났다.

아버지는 준산을 향해 가라고 손짓을 했다.

준산을 태운 군용버스가 학교 정문을 지날 때까지 아버지는 느티나무 벤취 앞에 서 있었다.

아버지가 시야에서 벗어나자 준산은 가방에서 성경책을 꺼냈다. 시편 첫머리를 펼쳐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겼다. 형광펜으로 색칠한 시편 25장 12절 구절이 보였다. 

‘주여 여기를 보소서, 주여 여기를 보소서, 진실로 진실로 기도드리오니 저들이 행한 죄의 근원이 여기에 있나니 비록 그 죄는 악하나 주여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자정이 지날 때쯤이었다. 당직 서고 있는 승재의 호출기가 울렸다. 호출기에 찍힌 번호는 아버지가 입원 중인 중환자실 번호였다. 중환자실에서의 긴급 호출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비를 잘 넘겼다. 하지만 이 날은 느낌이 이상했다. 가슴이 허하고 손 까지 떨렸다. 집으로 전화를 했다. 순호는 깊이 잠이 든 듯 했다. 독일 유학중인 순호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일주일 전 귀국해 있었다. 몇 번이나 벨이 울리고서야 순호는 수화기를 들었다. 승재의 전화임을 직감했고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재가 중환자실 입구에 도착하자 순호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그렇게 말하고선 승재는 중환자실 문을 열었다. 순호가 뒤를 따랐다. 승재는 자기를 쳐다보는 당직 의사의 눈길도 아랑곳 않고 아버지가 누워 있는 침대로 향했다. 불길했다. 유독 아버지가 누워 있는 침대에만 커튼이 반쯤 쳐져 있었다.

아직 아버지는 살아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숨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승재는 안도하며 당직 의사를 쳐다보았다. 여태 그런 것처럼 오늘도 이러다 한 고비 넘기겠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혈압제를 계속 투여하고 있는데 보시다시피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힘들 것 같습니다.”

키가 작고 얼굴이 동글동글한 당직의사의 말에 순호는 가늘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간혹 의식이 돌아올 때마다 승재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고맙다는 말만 했다. 그저 고맙다는 말만했다.

아버지, 순호와 함께 한 지난 10년은 승재에게도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족이 생겼다는, 자신에게도 모실 아버지가 있고 돌 볼 동생이 있다는 게 여간 뿌듯한 게 아니었다. 일을 해도 신이 났다. 그렇게 많지 않은 경찰 월급에도 승재는 자주 아버지와 순호를 데리고 외식을 했는데 그 마음 한 자락에 이제 나도 가족이 있다는 걸 은근히 자랑하고픈 지극히 소박한 심정이 있어서였다.

아버지는 집안일을 돌봤다. 새벽밥을 하고 찌개를 끓이고 두 아들의 옷을 다렸다. 조그맣고 볼품없이 보였던 순호도 잘 먹어서였는지 얼굴에 윤이 났고 키도 쑥쑥 자랐다. 무엇보다 공부를 열심히 해 성적이 좋아 승재와 아버지를 흡족케 했다. 

아버지는 경찰서 구경 오는 걸 좋아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울까 조심스러웠는데 승재가 이를 눈치 채고 퇴근 시간 맞추어 오시라 한 이후부터는 한 달에 두서너 번꼴로 경찰서를 찾곤 했다.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다. 꼭 음료수나 과일을 사가지고 와 팀원들에게 돌렸다. 장애인 아버지가 경찰서를 자주 찾아오는 게 탐탁지 않게 여길 수도 있었으나 승재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두 부자는 간혹 늦은 혹은 이른 퇴근길에 대포집을 찾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는 주인장에게 ‘얘가 내 아들’이라며 자랑을 했다.


“운명하셨습니다”

당직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선 중환자실 간호사들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내렸다.

순호는 아버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대고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