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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파더>

[소설 '파더'] 무제2

by 뉴클리어 2012. 5. 15.

 

 

광채가 났어, 허수룩하게 옷을 입어도 훤했지. 신입생 환영회 때 저녁만 먹고 아르바이트하러 간다고 할 때 내심 섭섭하게 생각지 않은 여학생들이 없었어, 명문대학교 입학했다는, 자부심이 상당했고 콧대가 높았던 게네들이 말이야, 워낙 말이 없고 학교 행사는 거의 참석 안 했던 민수가 3학년이 돼 늦깎이 운동권이 된 건, 운명이라고밖에 할 수 없지, 그래 그건 운명이야, 2학년 겨울 방학 때였을 게야, 애가 워낙 착하고 성실하니까 지도교수님이 도서관 근로장학생 신청을 해줬어, 수업마치고 도서관서 서너 시간 정도 허드렛일 도와주면 등록금을 1/3 정도만 내면 됐으니 괜찮았지. 그때 영옥이는 총학에 있었는데 수배 중이었어,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학교도서관 꼭대기, 청소부 아줌마들이 쉬는 골방에서 숨어 지냈는데 학교에 상주하다시피 하던 짜바리들도 감쪽같이 속았지, 영옥이가 학생회 일하면서 청소부 아줌마들 많이 도와줬었거던..... 영옥이가 어려우니까 청소부 아줌마들이 보호해줬던 거지.


민수와 영옥이가 같은 과였지만 만날 일이 없었어, 영옥이는 학생운동 한다고 거의 수업에 안 들어왔고 또 영옥이가 한 학년 위였으니까, 민수가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 일을 하지 않았다면 둘은 영원히 모르고 지냈을 꺼야.


어떻게 알았는지 사복형사들이 도서관 골방을 덮쳤어, 그 새끼들 여자라고 봐주고 뭐가 없었지, 그때는 전두환이가 정권 장악하고 느긋할 때라 학원에도 유화적인 제스쳐를 취할 때였는데도 도서관 5층 골방에서 질질 끌고 내려오면서 반항하는 영옥이 머리채를 붙잡고  뺨을 때리고 했으니까. 그 형사새끼 중 한 놈이 도서관 앞에 대기하고 있던 차 앞에서 수갑을 채우려하니까 영옥이가 악을 쓰며 버티더라고, 그러면서 자꾸 주위를 돌아보며 도와 달라는 눈짓을 보내는데..... 그때 세훈이도 어떻게 알았는지 와 있더라고, 세훈이 하고 영옥이가 깊은 관계라는 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지, 연애질 하면 안 된다는 조직의 불문율을 깨고 말이야, 세훈인들 영옥이가 잡혀 가는 걸 뻔히 보면서도 어쩔 수 있었겠어, 세훈인 아직까지 노출이 안 돼 있었어, 조직에서 키울려고 별도로 티를 꾸리고 있었는데 괜히 잡혀 가 탈이 날 수는 없잖아, 영옥이가 자꾸 버티니까, 그러니까 산만한 형사 새끼가 영옥이 뺨을 때리고 고개를 숙이니까 그 곰 같은 손바닥으로 머리를 때리는데 퍽퍽 소리가 날 정도였어, 하~ 그 씨발새끼 아직도 얼굴이 기억 나, 남학생들이 수십 명 있었는데 뭐, 어쩔 수 있나, 쪽팔렸지만 어쩌겠어. 구경도 구경 나름이지....정말 곤혹스럽더라고 여학생이 혼자 당하고 있는데,,,,. 세훈이 그 녀석도 부들부들 떨면서 얼굴이 벌게지던데....담배 있으면 하나 줘~


후우~~~. 


그때였어, 도서관 현관 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어떤 사람이 부웅~ 날라 영옥이 쥐어 패던 그 형사새끼 머리를 정확히 발로 차 뻐리더라고, 흐흐흐~ 그 산만한 형사새끼가 뒤로 벌렁 나자빠지는데... 한 놈은 그렇게 보내고 다른 형사새끼 두 놈도 눈 깜짝할 새 조져버리는데... 그래 눈 깜짝할 사이였어. 누군가 싶어 가만이 보니 민순거라, 박민수.....


난 두 번 놀랐어, 그 착하고 순했던 민수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그리고 가만히 서 있는 민수의 눈에서 불꽃이 튀던데..... 사람 눈이 아니라 꼭 맹수 눈 같았다니까. 지켜보던 수십 명의 학생들이 박수 치고 환호하고 난리였지, 그 새 세훈이는 영옥이를 피신 시켰어....., 얼마 안 돼 잡혔지만. 근데 민수는 그렇게 큰일을 저질러 놓고 도망 갈 생각도 않고 우두커니 서 있는 거라, 하기사 도망 갈 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망가서 해결 될 일도 아니었지. 정신을 차린 짜바리 새끼 세 놈이 민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끌고 갔어.


난 민수가 고아란 걸 그때 알았어, 지도교수 님과 서부경찰서 유치장에 있는 민수 면회를 갔었는데, 담당 형사와 지도교수 님이 얘기하는 걸 들었거던, 그제서야 그 놈이 왜 그렇게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했는지 이해가 되더라고... 대단한 놈이었지, 고아 주제에 상위권 학생들만 온다는 **대학을 다녔으니까. 웃기는 건 그렇게 엄청난 일을 저지른 놈이 글쎄 구류 20일 살고 나오더라고... 알고 보니 민수 이놈이 자기는 경찰인 줄 몰랐다. 왠 폭력배가 여자를 납치하는 줄 알았다고 일관되게 진술한 모양이야, 흐흐흐~. 경찰 입장에서도 민수 뒷조사를 해보니 깨끗하거든, 데모한 전력도 없고, 무엇보다 지도교수 님이 확실하게 보증을 섰지, 그런 놈 아니다. 법을 어길 놈이 아니다, 정말 저 놈이 뭔가를 크게 오해를 했을 것이다. 경찰 입장에서도 쪽팔리는 일이거던, 상부에 보고했다고 생각해봐, 뭐라 했겠어, 형사 셋이 수배된 여학생 하나 체포 못 했다는 거, 그것도 학생 한 놈에게 두들겨 맞아 그리 되었다면 그 놈들 신상이 좋았겠어, 문책을 받아도 크게 받았겠지,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덮어 버린 모양이야, 흐흐흐~


한 잔 더 따라봐~


캬아~


그 후로 데모할 때면 선두에서 화염병 던지는 민수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지, 정말 빨랐어 민수는, 난 도망가기 바빴는데 민수는 밀릴 때도 끝까지 후미에 남아 잡으러 오는 전경 놈들에게 화염병을 던지고 돌을 던졌으니까... 언젠가... 그래 비 오는 날이었어, 음산한 게 막걸리 먹기 딱 좋은 날이었어, 학교 앞 막걸리 집이란 막걸리 집들은 그야말로 학생들로 난장판이었지, 인문대에서 화염병 좀 던져 본 놈들은 아마 학사주점에 다 모였을 꺼야, 언더, 오픈에 있는 여자애들도 다 왔었는데, 걔들....민수가 없었으면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았을 꺼야. 흐흐흐~ 돌아가면서 한곡씩 하는데 민수 그 놈도 뺄 수 없었지, 이놈이 ‘마른 잎 다시 살아 나’를 눈을 감은 듯 만 듯 지긋하게 부르는데 하~~~, 그렇게 애잔할 수가 없었어. 남자 노래 들으면서 울컥해보기는 내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으니까, 여자애들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어. 다들 술을 많이 먹었었거던... 밖에는 하염없이 비가 내렸어....


사건이 난 건 그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11월 중순쯤이었어. 복남이 형이라고 있었어, 전설적인 인물이었지, 부산 미 항공모함 타격 사건, 동두산 미군 납치 폭행 사건, 원주 캠프롱 화염병 타격 사건... 80년 초반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은 죄다 그 형이 했다고 보면 돼. 철저하게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지, 아무도 몰랐어, 언더 중에 언더였지.......... 영도에 있는 미 항공모함 타격 때는 해양대 학생으로 가장 해 수업까지 들었다는 거야, 그러면서 밤에는 자외선 망원경 들고 해양대 뒤 고갈산에 올라 항공모함이 들어오나 안 오나 살폈다는 거지, 한 달을 그 기서 살았다는 거 아냐, 텐트도 안 치고... 늦가을에 얼마나 추웠겠어. 그때 우리는 정말 궁금했어, 도대체 그 형이 부산항에 항공모함 들어온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는 게지.


하루는 단대 조직책이 날 부르는 거야, 중요한 일이 있으니 각오를 하라는 거야, 아 씨바 올 게 왔구나 싶었지, 난 대충 정리하고 군대갈려고 마음을 먹었었거던, 그날 밤에 모이라는 총학 사무실에 갔지, 열 명이 모였는데 딱 보니 화염병 쫌 던진 놈들이라....... 깜짝 놀란 건, 그기에 민수도 있었어... 한참 지나 총학 선전부장이 오더니 학교 꼭대기 학군단옆에 있는 벙커로 데려가더니 기다리고 있으라는 거야... 한 삼십 분쯤 지났을 꺼야, 쬐끄맣고 호리호리한... 콩만한 사람이 왔어, 안경까지 낀 전형적인 범생이 스타일이었지, 그 사람이 복남이 형인 줄은 일이 끝나고 알았어. 썰렁한 농담 몇 마디 하더니 다짜고짜 지도를 펼치데... 가만 보니 학교 앞 동네 지도더라고... 전지에 동네 지도를 확대 복사해 붙인 거였는데 골목 구석구석에 있는 상점 위치까지 다 기록되어 있더라고. 복남이 형이 한 집을 파란 싸인펜으로 찍더니 새벽에 타격할 집이라는 거야, 2층 집이라면서 타격할 곳은 2층이라고 하더만, 그러면서 제압 조 5명, 획득 조 3명, 예비 조 2명을 정해주더니 임무를 말하더라고, 민수와 나는 제압 조였어, 뭐 별다른 건 없었어, 새벽에 몰래 이층으로 올라가 제압 조는 그냥 몽둥이로 그 기 있는 놈들 두들 겨 패고 그 사이에 획득 조는 싸그리 뚱쳐 오는 거였으니까, 언제 챙겼는지 전경 진압봉까지 나눠주더라고... 글라스 컵에 소주 한 컵 씩 따라 주더니 마시고 잠깐이라도 눈을 부치라는 거야 흐흐흐~ 잠이 왔겠어...


새벽이슬 맞으며 내려갔지.., 학교 근처니까 한 이십 분쯤 내려가니 도착하더라고, 전부 복면을 했어, 복남이 형이 2층으로 올라가 문을 따고 들어 가 불을 켜는 것과 동시에 뭐 그냥 닥치는 대로 줘 팼어, 스포츠 형 머리를 한 놈도 있었고 장발도 있었는데, 자다 일어나 맞으면서도 멀뚱멀뚱하고 있는 놈, 대가리 박고 있는 놈..... 진압봉으로 작살을 냈지... 그 사이에 잽싼 놈 둘은 팬티 바람으로 도망을 가더라고, 도망 못 간 놈 세 놈을 한 곳으로 몰아 놓고 주위를 살폈어, 컴퓨터에 복사기, 팩스기, 고성능 사진기... 그 새끼들 그기서 우리 학교를 사찰하고 있었던 거야, 그때 난 씨바 좇 됐다 싶었어, 적당히 정리하고 군대 가려고 했는데... 걸려도 크게 걸렸으니까, 있는 거 없는 거 싸그리 다 담으니 마대자루로 세 포대 정도 나오더만, 그 새끼들 묶어 놓고 총학으로 날랐지. 한 삼십 분도 안 걸렸을 꺼야. 


발칵 뒤집혔지, 뺏어 온 물건이 너무 엄청난 것들이었거던, 운동권에 대한 동향 자료는 말할 것도 없고 총장, 보직교수 심지어는 정부,학교 편들던 보수성향의 재단파 교수들에 대한 사찰문건도 있었으니까, 재단파 교수들에 대한 사찰자료는 학민투할 때 두고두고 우리가 써 먹었지 흐흐흐~ 학교 공사 이권에 개입한 거 룸싸롱 간 거 아가씨들 데리고 2차 가는 사진도 있었으니까. 재단파 교수새끼들 얼마나 배신감이 컸겠어, 대머리 새끼를 난세를 구한 위대한 영도자로 떠받들고 정권에 충성했는데 사찰이라니 흐흐흐~. 왜 정보기관에서 같은 편을 사찰했는지 의아했는데 뭐 나중에 혹시 변절할지 모르니 보험용으로 수집해 놓은 게 아니겠나 싶었어.....


놀란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는데 항공사진은 정말 기겁할 정도였어, 학교 광장에서 집회하는 사진이었는데 멀리서 찍으니 얼굴이 콩알보다 작았어 좁쌀만했지, 근데 이걸 돋보기로 대 보니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거야. 그때가 80년대 초라고, 80년대 초... 있는 집에서도 구식 카메라 하나 있는 정도였다고. 담배 하나 더 줘바~  후우~~~. 뭐 가까이서 찍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던 거야, 멀리서 찍은 사진만 봐도 어떤 놈이 뭘 하고 어떤 집회에 참석했고 무슨 데모대에 있었는지 죄다 알 수 있었던 거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건 그 다음이지, 후우~~~ 내 옆에서 인문대 조직책이 자료를 살피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들부들 떠는 거야, 그러면서 허겁지급 보던 자료를 챙기더니 복남이 형과 나를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는 거야,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지, 단대 조직책이 본 건 학교 내 활동하고 있는 망원에 관한 거였어, 망원이 뭔지 알어? 학생 신분으로 경찰이나 안기부에 정보를 주는 끄나풀을 말하는 거야, 프락치.... 말로만 떠돌 던 안기부 장학생, 경찰청 장학생의 실체가 드러난 순간이었지. 세 놈의 망원이 올린 보고 내용을 기관원이 정리한 자료였는데 망원을 어디서 만나 어떤 내용을 수집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어, 날짜별 시간대별로 정리된 내용에 망원의 이름이 영문 이니셜로 적혀 있었는데 A.J.H, K.C.H, W.S.H로 되어 있는 거라. 그 중에 한 영문이니셜이 확 들어왔지....


W.S.H.......  W.S.H........ W.S.H.......... 설마했지, 아니라고 이건 아니라고 속으로 외쳤어, 자료를 든 내 손도 부들부들 떨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