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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파더>

[소설 '파더'] 제3장 꿈(1)

by 뉴클리어 2011. 8. 19.

 

“아버지, 그기서 뭐하세요”


준산은 반가운 마음에 큰 소리로 불러보았지만 아버지는 대꾸하지 않았다. 딴 사림인양 모르는 사람처럼 승용차 안에서 어느 한 곳 만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꿈인가’ 


준산은 현실도 아닌 꿈도 아닌 그 경계선이 주는 모호함 때문에 불안감을 느꼈다.


호텔 주위는 깜깜했다. 북한산 중턱인 듯 언젠가 한 번 가본 듯 낯익은 호텔은 을씨년스러웠다. 로비 앞과 고층의 한 두 객실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버지는 주차장 입구와 현관 로비가 들여다보이는 호텔에서 조금 떨어진 편백나무 숲 근처 도로변에 바짝 차를 대고 있었다.


은빛의 중형 승용차가 지하 주차장에서 빠른 속도로 나오더니 호텔 입구를 슬쩍 지났다. 호텔을 빠져 나온 차는 아버지가 있는 도로를 지나 도심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얼마 후 다시 호텔 지하 주차장 쪽에서 헤트라이트 불빛이 보였다. 검정색 세단이었다. 이 세단이 편백나무 숲 도로변을 지나자 아버지는 바로 시동을 걸었다.  전조등이 켜졌다. 아버지는 이 검정색 세단을 쫓기 시작했다.


얼마나 흘렀을까. 준산의 눈에 비친 것은 아파트 실내 주차장이었다. 그기에 두 남자가 서 있었다.


아버지가 보였고 그 앞에 서 있는 낯익은 뒷모습의 한 사내가 보였다.


뭔가 심각한 얘기가 오가는 듯 했지만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뭔가를 호소하는 듯 했다. 표정 변화도 심했다.


반면 낯익은 뒷모습의 사내는 그냥 무심이 듣고만 있는 듯 했다.


‘여기서 끝내자, 이제 그만하자’


‘.........’


‘뭐라고 말 좀 해보라고, 버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 어쩌겠다는 거야’


고함을 치는 아버지의 입모양이 보였다. 이마에 선 핏줄이 터질듯 꿈틀거렸다.


아버지는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그러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울면서 뭐라고 간절히 말하는 듯 했으나 도무지 들리지 않았다. 가까이 가 듣고 싶었다. 아버지 앞에 서 있는, 낯익은 뒷모습의 남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준산의 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아버지는 집에 와 있었다. 쇼파 앞에 멍하니 퍼질고 앉아 있었다. 거실 베란다 창문을 말없이 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는 분노하고 있었다.


‘이제 나 뒷조사하고 다니는 거야, 미행까지 하고 다니냐고 응, 그래 의원 님이랑 그 호텔에 같이 있었어,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야,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 줄 몰라, 다른 년놈들은 지 마누라 지 남편 도와준다고 사돈에 팔촌에 연락 다하고 생 지랄인데 당신 하는 거 뭐 있어, 나한테 도움 준 게 뭐냐고, 이거야 원 창피스러워서’


어머니는 분에 못 이겨 가슴을 치기도 하고 주방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 치려다 무슨 생각이 갑자기 난 듯 멈추기도 했다.


‘...........’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준산은 답답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뭔가 큰 사단이 난 듯 했는데 아무리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았다.


‘영옥아 이건 아니잖아, 여기까지만 하자, 이제까지 일들 전부 없는 걸로 하고 우리 다시 시작하자 응 나 다시 한 번 잘 해볼게 영옥아’


아버지는 어머니의 눈을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비굴해 보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표정은 냉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과는 이제 더 같이 살 수가 없어, 아이들을 위해서도 갈라서는 게 맞아, 날 위한다면, 가족을 위한다면 이혼해줘 제발’


어머니는 차가운 표정으로 뭔가를 말하는 듯 했다.


그 순간 아버지의 눈에서 섬뜩한 살기가 어렸다. 굶주린 맹수가 먹이 감을 막 본 것처럼 눈에서 섬광이 일었다.


‘아버지 안 돼요’


준산은 악을 썼다. 이 상황 이 분위기는 분명 준산이 한 번 경험한 일이었다. 준산은 깊은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차라리 땅에 닿았으면 그래서 머리가 깨지고 몸이 부서져 버리면 좋으련만 계속 떨어졌다. 준산은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고함 소리에 놀라 준산은 잠에서 깼다. 온 몸엔 땀범벅이었다. 준산은 숨을 가프게 몰아쉬었다. 심한 갈증을 느꼈다. 해 뜨기 전 새벽이라 집안은 어두웠다. 냉장고로 향했다. 주방 식탁에 허리를 부딪치기도 했으나 준산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낸 준산은 허급지급 물통 두껑을 연 다음 물이 가슴 쪽으로 줄줄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선 한참을 멍하니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해가 뜨는 듯 베란다 창으로 짙은 금색의 빛이 들어왔다. 


준산은 허기를 느꼈다. 식탁 구석 조그만 바구니에 크로와상 몇 개와 쨈이 든 병이 보였다. 크로와상 하나를 통째로 입안에 구겨 넣고서는 꾸역꾸역 씹기 시작했다. 그 다음엔 두 개를 통 째로 넣고 씹었다. 아버지의 맹수 같은 눈빛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꿈은 너무도 선명했다. 준산은 심한 한기를 느꼈다.





“그 자식들 너무 한 거 아녜요? 지금 계파 따질 때냐고”


국회의사당 근처 우영각에서 30여명의 친이계 의원들이 조찬을 겸한 계파 모임 중이었다. 영옥은 흥분해 있었다. 서울시장 우성훈의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에 청와대로부터 당의 비협조를 질타하며 친이계가 앞장서 조직적으로 지원하라는 지침을 받은 후였다.


“아니 이번엔 우 시장이 대권 도전 안 한다고 기자회견까지 했으면 됐지, 더 이상 뭘 어쩌라고요”


영옥은 상석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는 계파 수장 이재홍을 보며 분통을 터뜨렸다.


“근데, 사실 우리가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닐까요, 지금으로선 투표율 30% 넘기기가......”


영등포가 지역구인 신재호는 좌중을 둘러보며 어렵게 말을 꺼내고선 이재홍의 눈치를 살폈다.


“진인사 대천명이라 했습니다.”


한 동안 듣고만 있던 이재홍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 시장이 이번 주민투표에서 이기고 지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냥 열심히 하면 됩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친박 쪽에 줄을 대려던 우 시장을 확실히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가 있어요, 친박이 지원 안 하는 게 꼭 우리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란 얘기입니다.”


이재홍은 말을 하면서도 간간히 눈을 감고선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지면 후폭풍이.....”


신재호가 말꼬리를 흐렸다.


“지는 게 우리 책임입니까. 자꾸 정치공학적으로만 생각하지 말란 말입니다.”


이재홍이 버럭 화를 내자 신재호는 이내 머리를 조아렸다.


“우리가 언제부터 편한 길을 걸었습니까, 언제부터 이길 싸움만 했습니까, 이기도 지는 경우가 있고 져도 이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 주민투표는 이기면 이기는 것이고 져도 이기는 겁니다. 역사 앞에 떳떳해야지요, 우리는 망국적인 표퓰리즘 앞에서 나라를 구해야한다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이요, 진립니다. 지면 어떻습니까, 설사 이번 투표에 진다해도 국민들은, 역사는 우리가 불의에 대항한 정의로운 세력이었음을 분명히 인정해줄 것입니다.”


갑자기 분위기 숙연해졌다.


“각하께선 요즘 잠을 못 주무신답니다.....”


순간 이재홍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나라 걱정에 잠을 못 주무신다고요, 빨갱이 정권 10년 동안 거의 망해가던 나라를 각하의 영도력으로 이제 거의 제자리를 찾았는데 고지가 바로 저긴데 당이 이렇게 지리멸렬해서야, 우리 친이계가 이렇게 나약해서야 되겠습니까”


이재홍은 이렇게 말하고서는 긴 한숨을 쉬었다.


“끝까지 가는 겁니다.”


단호한 영옥의 목소리였다.


“우리의 나약해지는 것을 저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끼리 똘똘 뭉치지 못한다면 우린 다 같이 망하는 겁니다. 명심해야 됩니다. 홀로 싸우는 우 시장을 우리가 구해야 합니다.”


영옥의 호소에 의원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재홍은 팔장을 끼고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영옥은 식은 커피 잔을 들었다. 그 순간 커피잔이 손잡이에서 똑 떨어져 나가 테이블 위에 떨어졌고 쏟아진 커피가 영옥의 옷과 좌우에 앉아 있던 의원들의 바지자락에 튀었다. 





“충성” 


마른 수건으로 대대장 집무실 응접 테이블 유리를 입으로 불며 열심히 닦고 있던 대대장 당번병이 준산을 보고서는 경례를 붙였다. 호리호리한 체격, 하얀 피부, 미남형의 늘 서글서글했던 당번병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불만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전역을 몇 달 앞둔 시점에 새로운 대장을 모신다는 건 보통 녹녹한 일이 아니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습관이 어떤지를 파악 해 말 나오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를 해 놓는 것은 기본에 속했다. 심지어는 대대장 가정의 대소사까지 꼼꼼히 챙겨야 했다. 이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당번병으로서는 전임 대대장과의 익숙한 데서 오는 편안함을 포기해야 했다.


“대대장 님 출근 전이시지?”


준산은 대대장 집무실을 휘 둘러보고서는 당번병에게 의례적인 물음을 던졌다.


“네, 곧 오실 겁니다, 지금 위병소를 통과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밖에서 찝차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렸다. 준산은 집무실 창을 통해 밖을 보았다. 1호차 운전병이 대대장이 앉아 있는 선탑자 문쪽으로 뛰어 가는 게 보였다.


준산은 대대장 집무실 옆 당번병이 근무하는 탕비실 겸 대기실로 자리를 옮겼다.


당번병은 밖으로 나가 집무실 정문에서 다가오는 대대장을 향해 힘찬 경례를 하고서는 대기실 쪽문으로 허급지급 달려 왔다.


당번병은 꽃그림이 그려진 사기 찻잔에 홍차 티백을 넣고서는 끓인 물을 반쯤 붓더니 다른 한쪽에 미리 준비해 둔 미지근한 물을 다시 삼분의 일쯤을 부었다. 행여 찻잔에 얼룩이 묻을 세라 조심스레 홍차 티백을 꺼낸 당번병은 찻잔을 들고 조심조심 집무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대기실로 돌아 온 당번병은 준산을 향해 살짝 눈웃음을 짓고서는 이내 정리정돈을 시작했다.


‘삐익~’ 대기실 부져가 울렸다. 당번병은 재빠르게 집무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집무실에서 나온 당번병은 준산을 향해 눈짓을 했다.


준산은 대기실 거울 앞에서 다시 한 번 옷매무세를 가다듬었다.


준산은 집무실과 대기실을 잇는 쪽문을 열었다. 약식 경례를 하고서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열병할 때의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대대장이 앉아 있는 테이블 앞으로 다가 갔다. 신임 대대장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성, 대위 박준산 3박4일의 휴가를 마치고 복귀했기에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준산은 짧고 단호하게 휴가 복귀 신고를 했다.


신임 대대장은 앞으로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대위, 박준산”


준산은 신임 대대장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관등성명을 댔다.


“자네가 그 유명한 박준산 대위군 그래, 앉지”


대대장은 알 듯 모를 듯 야릇한 미소를 띄며 준산의 눈을 쳐다보았다.


쇼파에 앉은 대대장은 테이블 모퉁이에 달려 있는 당번병 호출용 부져를 눌렀다. 당번병은 대대장의 호출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는 듯 곧바로 홍차 두 잔을 들고 왔다.


“우리 박 대위, 집안이 좋더군”


찻잔에 살짝 입을 댄 대대장은 잔을 내려 놓고서는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준산을 바라 보았다.


“어머님은 지금 상임위가 어디신가?”


“문방위... 소속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대장의 급작스런 물음에 준산은 당황스러웠다. 준산의 집안 사정-그러니 모친이 현역 국회의원이고 부친은 비록 원외지만 집권 여당의 실세 정치인이며 장인은 중견 건설업체의 회장이라는 등등-을 왠만한 간부급 부대원이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묻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방위라....그래 요즘 아버님은 뭘 하시나, 활동이 뜸하신 것 같던데”


대대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부져를 눌렀다. 당번병은 대장이 지시를 내리지 않았는데도 깨끗이 씻어 말린 재떨이를 가져왔다. 재떨이 위엔 알미늄으로 만든 검정색 담배 케이스가 담겨져 있었고 에세 담배 한 개피가 얼굴을 쏙 내밀고 있었다.


대대장이 담배를 입에 물자 당번병은 잽싸게 대대장 테이블에 놓여져 있던 금장 찌포라이터를 가져와 불을 부쳐 주었다.


“이놈 이거 물건이야, 딱 삼일만에 내 동선을 다 파악해버리더라고”


대대장은 당번병을 보며 환하게 웃고서는 흡족한 듯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았다.


“최근엔 뵌 적이 없어서.....”


준산은 말꼬리를 흐렸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대대장은 담배를 중간까지만 피우고선 재떨이에 부벼댔다. 그리고선 일어났다. 준산도 따라 일어났다.


“그래, 앞으로 잘해보자고”


대대장은 다시 준산에게 악수를 청했고 준산은 짧고 굵게 관등성명을 댔다.


뒤돌아 대기실 쪽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아 참, 박 대위"


준산은 얼른 뒤돌아 자세를 바로 잡았다.


"며칠 전에 관사에서 뭔일이 있었다지"


대대장은 집무 테이블 의자에 앉으며 앞에 놓여진 결제서류를 뒤적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각별하게 주의를 하겠습니다."


준산의 표정이 굳어졌다.


"신경 쓰지마, 그럴 수도 있지 뭐, 가봐"


준산은 대대장의 그 말이 묘하게 들렸다.

대대장 집무실을 나온 준산은 비행대장이 근무하는 전략통제실로 향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