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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파더>

[소설 '파더'] 제2장 어떤 편지(2)

by 뉴클리어 2011. 5. 11.

 

 준산과 성구를 태운 택시가 B.O.Q 정문 가까이 다다르자 준산은 얼른 지갑을 열어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 기사에게 주며 말했다.


 “잔돈은 됐습니다.”


 택시에서 내린 두 사람은 정문에서 30여 미터 떨어진 숙소로 향했다.

 성구는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 입을 다물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조금 숙이고 걸었다. 그렇게 걷던 성구는 고개를 들더니 이내 준산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

 성구는 사투리가 아닌 표준말을 썼다. 


 “다시 한 번 제수 씨와 가족들을 잘 설득해봐, 그리고 니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게 뭔가를 깊이 생각하라고, 만약 니가 제대하고 그 일을 한다고 쳐, 잘 안 되면 어쩔 건데, 그땐 어떡하냐고, 죽도 밥도 안 될 수 있잖아”


 성구의 말에 준산은 가끔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준산의 B.O.Q 숙소 현관 앞에 다다르자 두 사람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준산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성구에게 말했다.


 “형님, 괜한 얘기를 한 거 같습니다. 오늘 막걸리 잘 마셨습니다. 잘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형수님께 안부 전해주세요, 우린 괜찮다고요”


 “괜한 얘기는, 그래 너도 쉬어라, 내일부터 정신없을 텐데....”


 준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 성구는 B.O.Q 맨 끝자락의 숙소로 향했다. 그런 성구의 뒷모습을 준산은 한동안 쳐다보았다. 성구는 한참을 가더니 뒤돌아서서는 준산을 향해 얼른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현관 오른쪽에 있는 우편물 함에는 한 곳에만 수북이 우편물이 쌓여 있었다. 며칠 집을 비운 표가 났다. 준산은 밖으로 삐져나온 우편물을 한 움큼 잡아 꺼내고서는 계단을 올랐다.


 페인트가 벗겨져 군데군데 부식이 된 철제문을 열고 들어서자 18평의 조그만 숙소는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싸늘했다. 입구 오른쪽에 있는 플라스틱 버턴을 ‘달칵’ 누르자 거실 형광등이 몇 번 깜박이더니 이내 환해졌다. 


 준산은 가방과 우편물을 숙소 현관 입구 신발장 위에 올려놓고서는 보일러부터 켰다. 집은 잘 정돈 되어 있었다. 거실 한편에는 아들 수석의 장난감이 가지런히 놓여 져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깨끗이 청소를 해놓고 떠난 상희를 생각하자 준산은 가슴이 아리해져 옴을 느꼈다. 


 샤워를 하고 따듯한 커피를 먹고 싶었던 준산은 가스렌지에 조그만 주전자를 올리고서는 불을 약하게 낮췄다. 새 속옷과 트레이닝 복을 챙긴 준산은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를 틀고 손을 갖다 대 보았다. 벨브를 최대한 열었지만 물은 미지근했다. 물줄기가 머리부터 가슴을 지나자 준산은 서늘해짐을 느꼈다. 


 상희의 말이 떠올랐다. 상희는 그날 밤 다시 한 번 간절하게 준산의 전역을 원했다. 경남개발 후계자가 아니어도 좋다고 했다. 그냥 어디든 가서 세 식구 오순도순 평범하게 살자고 했다. 상희는 비행 훈련 있는 날이면 극도로 불안해진다고 했다. 아무리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 해도 안 된다고 했다.


 샤워를 마친 준산은 가스렌지 불을 최대한 높였다. 적당히 데워지고 있었던 물은 이내 펄펄 끓기 시작했다.


 머그컵에 뻑뻑하게 커피를 탄 준산은 주방 식탁에 앉아 우편물을 뭉치 째 집어 들더니 하나씩 살폈다. 수석의 유치원비, 카드명세서, 준산과 상희의 휴대폰요금청구서 등이었는데 마지막은 편지 같은 것이었다. 수신인은 인쇄체로 주소와 박준산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발신인 란에는 주소도 없이 인쇄체로 ‘아버지가’로 되어 있었다. 무슨 광고물이려니 생각한 준산은 봉투도 열지 않고 옆으로 밀쳐놓고는 머그잔을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

 
 멀리 부산의 야경이 보였다. 이질감 같은 게 느껴졌다. 저쪽은 이쪽과 같이 어울리기 힘든 다른 세상처럼 여겨졌다. 어렸을 적 그러니 기억을 할 수 있는 어렸을 적, 저녁이 되면 먼 곳에서 불이 켜지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멀리 산 중턱에 위치한 무슨 창고 같은 곳이었는데 밤이 되면 불이 켜졌다. 혼자 힘으로 집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어린 준산에게 그 곳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처럼 여겨졌다. 준산은 처음 거울을 보았을 때의 기억도 떠올랐다. 어떤 물체의 뒤쪽에 분명 어린 아이가 있었다. 허나 아무리 뒤집어 봐도 뒤쪽으로 가 봐도 똑똑히 본 그 아이는 없었다. 앞에서만 보이는 그 아이, 눈을 돌리면 사라져 버리는 그 아이, 찾다가 찾다가 준산은 퍼질고 앉아 서럽게 울고 말았다.


 담배를 한 대 꺼내 물고는 깊숙이 빨았다. ‘이곳을 떠나 저곳에서 살 수 있을까’ 준산은 가슴이 답답해져 옴을 느꼈다. 갈증이 났다. 담배를 한 개피 더 물려다 말고는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 문을 열려던 준산은 뭔가가 생각이 난 듯 뒤를 돌아 주방 탁자 쪽을 바라다보았다.


 탁자 중앙, 가장 눈에 잘 띄는 쪽에 조금 전 밀쳐놓은 편지 한 통이 보였다.

 준산은 다시 한 번 편지 봉투를 찬찬히 살폈다. 발신인과 수신인은 프린터로 출력하여 오려 붙여져 있었다. 물을 마시려다 말고 편지봉투를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 담배 한 대를 더 물고서는 손으로 봉투 윗부분을 조심스레 쨌다. 봉투와는 달리 편지지는 아주 오래 되 보였다. 줄 칸이 나뉘어져 있는 한 장의 편지지에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러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글씨체가 눈에 들어 왔다.


사랑하는 내 아들 준산에게

그래, 너의 꿈이었던 조종사, 멋있는 조종사가 되었겠지.

넌 할 수 있다고 너라면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늘 보는 너이지만 지금도 널 보고 싶구나, 보고 싶구나,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도 너와 재희가 보고 싶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편지가 너에게 전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잘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 모든 걸 운명으로 돌리고 쓰기로 한다.

모든 걸 묻고 가고자 하였으나 너에겐 얘기를 해야겠다는 아비의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이것이 너에게 또 다른 고통과 번민을 안겨 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 이 못난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준산아 사랑하는 나의 아들 준산아.

준산아

네가 이 편지를 본다는 것은 못난 아버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걸 의미한다.

그렇다. 나는 지금 모든 걸 포기하고 모든 걸 안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이 지금 이 순간 내가 내린 최선의 결론이다.

준산아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이 연약하고 못난 아버지를 용서해다오.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리곤 두 번, 세 번을 다시 읽었다. 네 번 읽고 다시 한 번 더 읽었다. 읽을수록 준산의 손은 심하게 떨렸고 가슴은 쿵쾅거렸다.







 “됐다구요”


 “준산아”


 “아버지가 뭔데 저 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십니까? 저에게 그럴 자격 있습니까? 있냐구요”


 그 해 10월 15일 해질 무렵, 준산이 공군사관학교 2차 시험을 보러 가기 위해 강남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였다. 청원 행 표를 끊고 돌아 설 때 멀리서 배낭 하나를 메고 달려오는 아버지가가 보였다. 초췌해진 모습, 급하게 달여 온 듯 얼굴엔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준산은 더 짜증이 났다.


 공군사관학교 2차 시험은 정밀신검, 체력검정, 면접으로 이루어 져 3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당일 아침 일찍 입교를 해야 했기에 준산은 전날 충북 청원에서 하루 밤 묵어야 했다.


 “지금와서 왜 이러십니까, 혼자 간다고 했잖습니까, 언제부터 이랬습니까, 네, 아버진 필요 없단 말입니다.”


 “준산아 부탁이다, 이렇게 부탁하마, 오늘 하루만 같이 있자꾸나”


 
언제부턴가 준산의 아버지는 집에서 이방인이었다. 무능한 아버지였고 남편이었다. 영옥이 몇 번이고 어렵게 직장을 마련해줬지만 한 달을 못 버텼다.


 초등학교 때, 학교 행사가 있으면 바쁜 어머니를 대신 해 아버지가 온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준산은 창피스러웠다. 말끔하게 차려 입고 온 친구들의 엄마와 달랐다.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반듯하게 메고 온 몇 안 되는 친구들의 아버지와도 달랐다. 아버지는 늘 후줄그레한 잠바 차림이었다. 준산은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어머니가 왔으면 했다. 똑똑하고 세련된 어머니가 왔으면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늘 바빴다. 결국 준산은 저녁 늦게 집에 온 어머니에게 매달려 아버지가 이제 학교 안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학교에 오질 않았다.


 준산이 고등학교 진학하면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는 싸움이 잦아졌다. 아니 싸움이라기보다는 어머니의 일방적인 절규였다. 아버지가 침묵 할수록 어머니의 목소리는 커져갔다. 딱 한 번 노기에 찬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준산은 그날 처음으로 살기 띈 아버지의 눈을 보았다. 사람의 눈이 아닌 맹수의 눈이었다. 준산은 어머니에게 주먹질하는 아버지를 악을 쓰며 말렸고 동생 재희는 공포에 떨었다. 그날 새벽 준산과 영옥은 병원에 실려 갔고 아버지는 경찰에 체포, 연행되었다.


 어머니은 이혼을 원했지만 아버지는 응하지 않았다. 소송을 했지만 어머니가 패소했다.

그 후로 아버지는 집에서 일체 말이 없었다. 집을 나가 며칠 만에 돌아오곤 하더니 준산이 고3이 되고부터는 아예 들어오질 않았다.


 준산이 사관학교 1차 시험을 치르던 그러니 그해 8월에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지만 준산은 가지 않았다. 혼자서 아버지를 만나고 온 재희의 손에는 조그만 보자기 하나가 들려 있었다. 장뇌삼 몇 뿌리와 함께 쪽지가 있었는데 꼭 합격 해 꿈을 이루라는 내용이었다. 준산은 보란 듯이 쪽지를 갈기갈기 찢고서는 초록색 이끼에 곱게 쌓여진 장뇌삼 상자와 함께 쓰레기통에 쑤셔 박았다.

  

 준산이 청원 행 버스에 오르자 아버지는 급하게 매표소로 뛰어갔다. 운전석에 기사가 올라 시동을 걸때쯤 아버지는 헐레벌떡 버스에 탔다. 준산은 눈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창가 쪽으로 돌렸다. 

 준산의 옆자리가 비었지만 아버지는 통로 건너 편 쪽에 앉았다. 숨을 씩씩거리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슬며시 준산이 앉은 쪽을 쳐다보았다.


 버스가 한 참을 달렸다. 준산은 슬쩍 옆쪽으로 눈을 흘겼다. 아버지는 돋보기안경을 끼고 왼 손엔 성경책을 든 채 차고 있었는데 피곤한 듯 고개를 창가쪽으로 기대고 있었다. 성경책이 떨어질 듯 아슬아슬 해 보였다. 준산은 한동안 그 모습을 쳐다 보았다. 


 얼굴이 야위어 보였다. 그렇게 원망했던 아버진데, 미워한 사람인데 바로 옆에서 얼굴을 보자 준산은 왠지 모를 슬픔 같은 것이 가슴 한 구석에서 밀려왔다.


 버스는 저녁 8시 쯤 청원터미널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내리는 대도 아버지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준산은 아버지가 앉은 좌석을 발로 한 번 툭 차고서는 황급히 버스에서 내렸다. 먼저 내린 준산이 버스 쪽을 보자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오는 아버지가 보였다.


 가을 중턱의 날씨는 차가웠다. 터미널을 나온 준산은 무작정 걸었다. 택시를 타고 공군사관학교와 가까운 중산동으로 가야했지만 그냥 걸었다.


 이내 따라온 아버지가 준산의 뒤에서 헛기침을 한 번 하고서는 말했다. 


 “준산아, 배고픈데 밥 먹으러 가자”   


 준산은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쑥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더니 도로 건너편 간판에 한우갈비라 쓰여진 식당을 발견하고서는 준산에게 말했다.


 “저기 고기집 있는데... 갈까”


 준산은 아무런 말도 않았다. 그러더니 아버지가 가리킨 고기집 반대쪽에 있는 중국집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중국집은 이미 파장 분위기였다. 대 여섯 개의 테이블에 손님은 한 팀 남아 있었지만 주방이며 홀은 정리하는 듯 분주해 보였다. 


 백세주 그림이 그려진 앞치마를 두른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준산을 보고 말했다.


 “혼자세요? 아홉시에 마치니 식사만 됩니다”


 그때 아버지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아닙니다, 둘입니다.”


 두 사람은 입구 오른쪽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준산은 짜장면을 시켰고 아버지는 주인에게 사정사정을 해 탕수육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단무지와 소주 한 병, 작은 접시 두 개가 나왔다. 아버지는 자세를 바로 잡더니 아주 천천히 접시 두 개를 자기 쪽으로 갖다 놓았다. 접시에 간장을 조금 부었다. 간장이 접시 가장자리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그리고선 식초 몇 방울 떨어뜨렸다. 곱게 빻아 놓은 고춧가루 통을 코에 가져가더니 냄새를 맡았다. 민수는 나무젓가락으로 고춧가루를 살짝 짚더니 두 개의 앞 접시에 새초롬이 올려다 놓으며 준산을 쳐다보며 말했다.


 “많이 만들어 놓으면 향이 다 날라 가 버려, 이렇게 조금씩 만들어 먹는 게 좋지”


 준산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가지런히 놓여 진 단무지에도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리고선 막 만든 탕수육 소스를 준산 앞에 갖다 놓았다. 잔에 소주를 따르며 민수가 말했다.


 “너도 한 잔 할래”


 애써 눈길을 피하고 있던 준산은 그 제서야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선 잠깐 망설이는가 싶더니 두 손으로 소주잔을 들었다. 준산은 이런 상황, 이런 분위기가 어딘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준산이 두 손으로 잔을 들자 아버지의 얼굴이 환해졌다. 술병을 잡고 조용히 따르는 아버지의 두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늦게 도착한 충북 청원 중원동의 3층 짜리 여관은 낡았다. 


 출입문은 나무로 만들어 열고 닫을 때 삐걱이는 소리가 났고 사람 하나 앉을 정도의 좁은 화장실에는 하수구 냄새가 났다. 조그만 방에는 곰팡이 냄새가 났는데 시골 초가에나 있을 법한 카시미론 이불과 요가 방 한 구석에 포개져 있었고 그 맞은 편 쪽에는 12인치 정도 되는 로터리식 채널의 고물 텔레비전이 검정색 경대 위에 올려 져 있었다.


 준산이 세면을 하는 동안 아버지는 여관 카운터로 내려 가 방이 차가우니 불을 더 올려 달라는 부탁을 하고 이불을 하나 더 달라고 했다. 작달막한 키의 안내실 여인은 파마를 하고 있었는데 유난히 가슴이 커 보였다.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출렁거렸는데 꼭 큰 가슴을 자랑이나 하는 듯 보였다. 


 아버지가 이불과 요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을 때 준산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아버지는 가져 온 이불을 준산에게 덮어 주고서는 불을 껐다. 그리고선 조용히 준산의 옆에 누웠다.  


 준산이 갈증을 느껴 눈을 떴을 땐 한밤중인 듯 방안이 깜깜했다. 잠시 천정을 바라다 본 준산은 어둠에 익숙해지자 옆을 봤다. 비어 있었다. 주위를 살폈다. 화장실 문 틈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보였고 그 틈사이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준산은 조용히 일어나 인기척을 내지 않고 가만가만 화장실 쪽으로 갔다. 아주 조금 열려진 화장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하얀색 변기통 커버 위에 반으로 접힌 하얀색 수건이 놓여 져 있었고 수건 위에 반 쯤 펼쳐 놓은 성경책이 보였다. 그 앞에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무릎 끓고 두 손을 모은, 고개를 숙인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는 흐느끼고 있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희미하게 들렸지만 준산은 지금 아버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돌아 서 벽에 기댄 준산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2장 어떤 편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