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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떼

안나푸르나 라운드[9]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 3.


토롱라 정상에서 모두들 추위를 잊었다. 태어나 처음 보는 눈 마냥  눈 속에 뒹굴기도 하고 떼거리로 누워 사진도 찍는다. 이 곳에 오르기까지 곳곳에서 만났던 다른 팀과 사진찍는 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행사인냥 짝 짓기로 분주하다.  토롱라에 쌓인 눈이 없었다면 우리의 감동은 반감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눈은 가끔 우리를 이 세상이 아닌 곳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한다. 하물며 토롱라에서 만난 눈이라니. 각 팀 마다 준비해 온 국기를 들고 사진을 찍는 모습들이 흡사 에베레스트 정상에라도 오른 원정대의 모습이다. 하긴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높이인 5416m에 올랐으니 왜 안 그렇겠나. 모두들 이 세상을 살면서 이 만큼의 감동과 성취감을 가져본 적이 얼마나 있었으랴. 그나저나 피상 윗길에서 마지막으로 헤어진 프랑스 친구들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보다 쳐졌을까 앞서 갔을까. 혹시 이곳에서 볼 수 있을까 했는데 보이지 않아 아쉽다. 밧데리 다 된 카메라 대신 눈과 마음 속에 토롱라의 모든 풍경을 놓치지 않고 한장 한장 사진 찍듯이 새겨 넣는다.  누군가 눈밭에 스틱으로 써 놓은 'see you again'. 나도 이 세상 끝나기 전 꼭 한번 다시 오마. 안녕.....
바람이 불기 전 이곳 토롱라를 벗어나야 하므로 모두들 각자의 방식으로 토롱라와 작별하고 하산을 서두른다.히말라야는 발 길 닿는 곳 마다 달라지는 풍경으로 우리를 놀라게하기 예사지만 토롱라를 뒤로 하고 하산 길로 들어선 순간 우리는 또 한번 탄성을 내 지르고 만다. 첫날 산에 들어선 순간부터 토롱라까지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장면이 눈 앞에 사막처럼 펼쳐진다. 우린 또 다른 세계로 들어섰다. 광활하다고 표현해야겠다. 풀 한포기 없이 거칠고 황량한 이 돌 사막을.... 안나푸르나를 그리던 화가가 또 한번 바뀌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재료를 사용하는 화가로..........

사진이 없어 http://cafe.naver.com/trekking.cafe의 백두산님 카페에서 가져왔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리라

오늘 우리가 도착할 곳은 묵티나트. 5416m에서 3760m까지 1600m를 내려가야 한다.끝이 보이지 않는 급 경사 길이다. 토롱라에 오르기까지 한번도 없었던 고산증이 오히려 하산길에 나타난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스틱 하나에 의지해 엎어질 듯 경사길을 내려오려니 등산화에 맞닿는 엄지 발톱이 빠질듯이 아프고 발가락에 물집도 잡혔다. 완충없이 바닥에 닿는 충격으로 무릎도 아파오고...급격한 변화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몸이 곳곳에서 탈이 나기 시작했다. 자빠진 김에 쉬어가기도 몇 차례. 간간이 말을 타고 우리를 지나쳐 앞서가는 트레커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다가 이렇게 걷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해지기도 하다가..3시간 가량 내려가다 만난 숍.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가 바로 이것이리라. 뜻밖에도 주인 아저씨가 한국말을 한다. 의정부에서 1년간 이주 노동자로 일한 경험이 있다 한다. 가끔 네팔에서 이런 분들을 만나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복잡해 진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아저씨는 한국에서 벌어 온 돈으로 숍도 차려 한국의 기억이 나쁘지만은 않다하니 참 다행이다. 기회가 되면 또 가고 싶다는 한국은 이들에게는 기회의 땅인가 보다. 갑자기 영식이 아버지가 생각나네...나 국민학교 다닐 때 미국으로 돈 벌러 갔던 앞 집 영식이네 아버지. 코 찔찔이 영식이의 유일한 자랑은 "우리 아버지 미국갔다"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막 노동꾼으로 가셨던 것 같은데 미국에서 돌아오시던 날 동네 사람들이 몰려가 영식이 아버지가 가져온 미제 물건들을 구경하며 모두들 부러워 했었다. 커피, 쵸콜렛도 있었던 것 같고...그때 영식이네는 아버지가 미국서 벌어 온 돈으로 집을 샀던가 말았던가...
이제 다 왔다.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역시 백두산님 까페에서 가져 온 사진

묵티나트는 유명한 사원이 있어 인도 등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아 규모가 꽤 큰 곳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갖가지 기념품을 파는 좌판이 이어져 깔려있다. 나중에 포카라 숙소에서 일하는 예쁜 소녀에게 주게 된 목걸이 하나를 샀다. 내가 물건을 고르는 동안 앞서 간 일행들이 '밥말리 호텔'에 숙소를 정했다. 밥 말리는 자메이카의 가수 이름으로 호텔 주인이 밥 말리를 좋아해 지은 이름이라니 죽어 이렇게 이름을 남기기도 한다.
백두산님도 밥말리 호텔에서 묵으셨단다

토롱라->묵티나트 (10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