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마스떼

안나푸르나 라운드[5]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9.

10월17일
오늘은 이 곳 마낭에서 하루를 쉰다. 마낭의 고도는 3540m. 이후 4000m 이상의 고산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8시까지 침대에서 게으름을 피우다 일어나 얼음처럼 차가운 물로 밀린 빨래를 해치운다. 내일부터는 씻고 빨래하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손이 떨어져나가겠다. 은정씨는 빨래를 하다말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대야를 들고 나와 햇볕에 손을 녹이며 앉아있다. 빨래를 널고 있는 나에게 그 차가운 물로 빨래를 어찌했냐고 묻는다. "아줌마니까"대답하고 혼자 중얼거린다. 아줌마는 얼어죽을...흰 빨래는 희게 빨고 검은 빨래 검게 빨아 그대로 널고 있는 중이구만. 하지만 지금 이 곳 옥상은 햇빛이 매우 강하다. 빨래하기 좋은 날이다. 모두들 옥상에 나와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책을 읽거나 눈을 감고 누워있다. 오래간만에 갖는 한가롭고 편안한 휴식이다. 어디선가 들리는 하모니카 소리. 소리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어젯 밤 우리 옆 방에 혼자 들었다가 손톱깎기를 빌리러 왔던 이스라엘 친구다. 길 떠나는 배낭에 악기 하나 쯤 넣어다니는 여유. 간혹 그들 덕분에 우리도 행복하다.

이 친구의 다음 트레킹 코스는 에베레스트다

마낭은 트레커들이 고소적응을 위해 하루를 쉬어가는 곳이어서인지 각종 잡화점과 베이커리를 비롯해 그럴듯한 커피숍까지 줄지어 있어 유럽의 어디 작은 마을에라도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종환씨가 어디서 선글라스를 사가지고 와 은정씨에게 준다. "이래 봬도 샤넬이야"  "이 배낭도 노스페이스거든" 은정씨가 출발하면서 산 배낭을 가리킨다. 그 배낭은 사자마자 곧 지퍼가 다 고장나는 바람에 빨래집게로 고정시켜 메고 다니는 중이다. 샤넬이든 사넬이든 쓰고 눈고개만 무사히 넘으면 그만이다.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가지고 뒷산으로 소풍을 가기로 한다. 주미씨가 사다리를 타자고 즉석에서 사다리를 그린다. 결과 어젯 밤 황금 꿈을 꾼 내가 빵원이고 하필이면 제일 가난한 고학생인 병철씨가 가장 큰 돈이 걸려 울상이다. 좋은 꿈을 이렇게 허접한 행운과 바꿀 수 없다하고 내가 모든 사람들의 돈을 다 냈다. 어른 노릇하느라 녹아난다. 산 속에 들어오니 꿈이 선명하고 기분 좋은 꿈을 자주 꾼다. 며칠 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하여 하루종일 마음이 설레더니 어제 꿈은 내 여동생 둘이 황금 열쇠가 든 보석함을 나에게 주는 꿈을 꾸었다. 꿈 이야기를 하자 누군가 놀린다. "그거 태몽이예요"
소풍은 무슨...또 다른 고소적응 훈련이다. 올라가는 도중 쪽 빛의 호수가 동그마니 예쁘게 있고 정상에 올라가니 운 좋게도 바람이 없어 빵을 나누어 먹고 음악들으며 오래도록 해바라기.

                        야...한비야다


































은영과 주미. 파랗게 페인팅한 하늘.


다시 내려와 다른 사람들은 숙소로 돌아가고 주미씨와 나는 예쁜 커피숍에 들어가 맛있는 커피를 마신다. 스물 여섯살인 주미씨는 유치원 교사였는데 지금은 그만두고 커피를 배우고 있다 했다. 또한 요리에 관심이 많아 준비되는 대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라고도 했고 여행 끝나고 한국에서 다시 만나면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이 커피보다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주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제 인생에서 결혼을 덜어 놓고 보니까 내가 정말 젊은 나이더라구요" 라고도 했다.  나는 머리를 양갈래로 갈라 따 묶고 늘 자신감 넘치던 주미씨를 삐삐라고 불렀다. 말괄량이 삐삐.
이번엔 병철씨가 감기다. 어제 찬물로 샤워를 한게 원인인 듯 하다. 은정씨가 먹고 거짓말 처럼 나았다는 신라면을 발열제로 끓여준다. 마지막 라면이다. 저녁을 먹고 나니 어제 도착한 이후 전혀 모습이 안 보이던 나래스와 나제스,주미씨네 포터가 함께 들어오는데 술을 먹었는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자리에 앉자마자 포터 셋이 갑자기 '네쌍삐리리'라는 네팔 민요를 흥겹게 부르기 시작한다. 늘 수줍어 보이던 나래스까지.오늘도 네팔은 무슨 축제라한다. 일년 열두달 축제가 끊이지 않는 나라다. 불도 없는 밖에서 동네 아이들이 달빛에 의지해 떼지어 다니며 냄비를 두드리고 전통 악기를 불며 떠들썩하다. 폭죽이 터지고 노랫소리 또한 요란하다. 역시 축제의 주인공은 어딜가나 아이들이다. 오늘 밤을 샐 모양이다.  마낭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지난다.

네쌍삐리리~ 노래하는 나제스와 나래스